“당신은 소중합니다”…사스레피나무(獜木)

새화순신문 | 기사입력 2019/04/29 [20:50]

“당신은 소중합니다”…사스레피나무(獜木)

새화순신문 | 입력 : 2019/04/29 [20:50]

 

▲     © 새화순신문

                                                     ♦김진수 회장/전남들꽃연구회 

 

사스레피나무의 속명 ‘유리야(Eurya)’는 ‘크다, 넓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유리스(eurys)’에서 유래한다. 

속명이란 식물의 형태나 특성, 꽃피는 시기, 생육환경의 특성, 신화 속 인물, 식물학자 등의 표식으로 그 유래를 밝힌 것인데 사스레피나무에서는 그 풀이가 쉽지 않다. 

키는 보통 1~3m로 작고 잎은 손톱만 하며 꽃은 그보다 더 자잘하다. 과연 나무의 어디에서 저 ‘큰’의미를 길어 올렸을까. 

사스레피나무 이름은 제주의 방언 ‘가스레기낭’에서 왔다고 한다. 가스레기는 가시랭이의 방언이고 이것은 벼 보리 따위의 수염인 까끄라기·까락·까시레기와 같으며 또 살갗이 터서 일어나는 거스러미와도 통한다. 

가스레기나무가 고목이 되면 목피에 울퉁불퉁한 부스럼이 돋고 손거스러미처럼 껍질이 갈라져 벗겨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와 닮았다. 

사스레피나무의 다른 이름 ‘가새목’에서는 ‘가새’의 특징이 보인다. 사각의 틀을 제작할 때 튼튼하게 고정할 목적으로 가운데를 사선으로 덧대주는 부재(部材)를 말하는데 또 가위의 방언이기도 하다. 

사스레피나무의 가지는 마치 가새나 가위처럼 사선으로 하늘을 찌르는 아주 야무진 태가 있다. 

   
▲“당신은 소중합니다”란 꽃말을 가진 사스레피나무

생약명인 ‘인목(獜木)’에선 아예 튼튼할 린(獜)자를 썼다. 

한자명 ‘야차(野茶)’는 야생 차나무 그림이고 ‘유엽차(油葉茶)’는 광택이 나는 도톰한 이파리의 묘사이다. 

사스레피나무속 식물은 날선 해풍을 견디고 염분을 받아내며 음지와 양지를 가리지 않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 

자연적으로 낙하하여 산포하는 종자의 발아력도 양호하다. 

남부해안에서 낮고 넓게 형성된 우묵사스레피나무 숲들은 기실 속명의 ‘크다, 넓다’의 유래를 공감하게 한다. 

사스레피나무는 암수딴그루로 4월에 꽃이 피는데 흰빛과 자백색이 많으며 전년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1~4개씩 줄지어 핀다. 

꽃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난다. 

낙엽활엽수 잎의 수명은 보통 6개월이지만 사스레피나무 잎은 두 해 이상의 긴 시간을 두고 시나브로 피고지기 때문에 늘 푸른 나무로 보인다. 

열매는 8~10월 사이에 자흑색으로 익으며 과육 속에는 많은 종자가 들어있다. 

어린가지는 녹색이고 수피는 미끈한 회색이며 잎은 타원형의 가죽질이다. 

우묵사스레피나무는 잎 가장자리가 뒤로 젖혀져 오목(凹)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키는 보통 1~2m로 사스레피 보다 작으며(드물게 사스레피는 7m, 우묵사스레피는 5m까지도 발견된

   
▲우묵사스레피나무

다.)

꽃은 11월에 핀다. 

거제도에는 잎 가에 톱니가 없는 섬사스레피나무가 자라고 잎이 넓고 두터운 떡사스레피나무도 산다. 

사스레피나무는 중국,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 인도 등 아시아 동남부 및 태평양 열도를 중심으로 약 70종이 분포하고 우리나라는 전남, 경남, 제주의 해발 900m 이하 산록과 계곡에 자생한다.

사스레피나무의 멋스러움은 역시 한겨울에 빛난다. 

일곱 빛깔 단풍잎이 다 날리고 숲은 텅 비어 쓸쓸할 때 이제부터 추위를 달래며 새봄을 재촉하는 늘푸른나무들의 합창이 시작된다. 

초록 미소를 머금고 한껏 기지개를 켜는 소녀처럼, 바다를 경계하는 초병 오빠처럼 모두들 아리땁고 씩씩하다. 

사스레피나무의 윗가지는 입학식장의 꽃꽂이수반에 오르고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하는 그 꽃다발 속에서도 반짝이던 나무이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참 곱고 여린 꽃들의 뒷줄에 서서 앞 꽃을 돋보이게 하고 자신은 푸르디푸른 내일을 향하는, 결의에 찬 눈망울들 같다. 

“당신은 소중합니다!” 

사스레피나무의 꽃말이 꽃다발 속에서 소리친다. 

문득 그날 그 교정에 울려 퍼지던 노래가 산울림이 되어 이제도 귓가에 쟁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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