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찾아 떠나는 화순 피서여행①

더위야 물럿거라! 내가 간다!

새화순신문 | 기사입력 2018/07/25 [11:07]

초록 찾아 떠나는 화순 피서여행①

더위야 물럿거라! 내가 간다!

새화순신문 | 입력 : 2018/07/25 [11:07]

 

▲     © 새화순신문

세계자연문화유산 고인돌과 천불천탑, 신비한 와불과 천하제일경 화순적벽이 있는 산자수려한

화순에는 쏠쏠한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들이 많다.

장마 그치면 곧이어 밀어닥칠 불볕더위, 여름나기할 수 있는 화순의 피서지를 찾아가보자!

 

마음 물들이는 초록의 여운, 연둔 숲정이

이맘때 화순은 짙어진 녹음 아래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던 어린 날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할머니 무릎에 누워 느끼던 그 푸르고 맑은 바람은 어린 마음에도 감탄할 만큼 아주 시원하고 달콤한 매력을 달고 있다.

그리운 기억의 언저리와 맞닿아 있을 것 같은 동복의 둔동마을, 이곳은 숲정이가 그림같이 펼쳐지는 풍경으로 소문난 곳이다. 숲정이는 '마을 근처 숲'을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1500년경 여름철 홍수를 막기 위해 나무를 심은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울창한 숲을 기대하고 조성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레 시간이 흐르고 흘러 아름다운 숲이 됐다.

 

방랑을 멈추게 하는 절경 화순적벽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가다가 서니

산 푸르고 바윗돌 흰데 틈틈이 꽃이 피었네

화공으로 하여금 이 경치를 그리게 한다면

숲 속의 새소리를 어떻게 하려나

-김삿갓 '경치를 즐기다'

 

방랑시인 김삿갓을 멈추게 한 화순의 으뜸 풍경은 다름 아닌 적벽(赤壁)이다. 적벽은 조선 중종 때 화순에 유배된 신재 최산두가 중국 양쯔강의 적벽에 버금간다며 이름 붙인 붉은 절벽이다. 화순에는 동복천 상류인 창랑천을 따라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 등이 있는데 이들을 모두 합쳐 '화순적벽'으로 부른다. 이 중 단연 최고는 노루목적벽이다.

 

가까이 두고 오래 머물고 싶어라 누각과 정자

화순은 누각과 정자의 고장이다. 물염정 말고도 수많은 누각과 정자를 마주하게 된다. 누각과 정자를 일컫는 누정은 예부터 경치가 좋은 곳에 지어졌다. 다시 말해 누정 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은 곧 화순이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땅임을 의미한다.

동복촌의 지류인 남면의 외남천(사평천)을 거슬러 오르면 녹음이 우거진 임대정 원림을 만난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89호로 지정된 임대정 원림은 정자와 연못, 원림이 한데 어우러져 운치를 빚어낸다. 임대정 원림을 꾸민 사람은 조선 철종 때 병조참판을 지낸 사애 민주현이다. 그는 1862년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해서 이곳에 정자를 짓고 '임대정(臨對亭)'이라 이름 붙였다. '임대(臨對)'는 중국 송나라 유학자의 '낙조임수대려산(落朝臨水對廬山)'이라는 시구에서 따온 것으로 '산을 대하고 연못에 임했다'는 뜻이다.

 

동면 서성제 안에 있는 환산정(環山亭)도 운치가 제법 좋다. 환산정은 병자호란 당시 의병을 이끌고 청주까지 진격했던 백천 류함이 인조의 항복 소식을 듣고 낙향해 지은 정자다. 본래

환산(環山)'이란 이름대로 산으로 빙 둘러싸인 깊은 곳에 있었으나 1967년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물 위에 섬처럼 떠 있게 됐다.

 

능주면 관영리 지석천 상류에 자리한 영벽정(映碧亭)은 화순을 대표하는 누각이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정확하게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김종직과 양팽손이 쓴 시 등으로 보아 16세기 후반 관아에서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영벽정은 정면 3,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연주산을 마주 보고 있다. '영벽(映碧)'이라는 이름은 연주산의 자태가 지석천의 맑은 물빛에 비춰지는 모습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능주팔경 중 하나로 예부터 많은 시인과 묵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선인들은 영벽정에 올라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며 세상 시름과 걱정을 잠시 내려놓았다.

 

  /이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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